내가 참석했던 Teaching Institue의 첫날은 인상적이었다.
교육 철학에 대한 방대한 분량을 소화해야 했는데 강사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소그룹 활동을 통해서 서로 가르치고 배웠으며 정해진 시간에 깔끔하게 일정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방법은 분량의 리딩자료를 세그룹으로 나누고 각 그룹에 2인 정도를 배정한 후 6명이 모여서 자신의 분량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읽어온 사람의 역할이 중요했고 한명이 설명하기에 부족한 부분들은 다른 한명이 보충해 줄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설명하고 묻고 토론하는 가운데 엄청나게 참여도 높고 밀도 있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강사의 사전 준비와 체계적인 실행이 엄청나게 중요하겠지만 막상 대부분의 시간에 강사는 시간 관리 하고 학생들의 논쟁의 포커스를 재조정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는 일반적인 교수의 강단 강의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효과적이고 흥미로웠다.
위의 경험은 Team Based Learning이라는 테크닉과 닮은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다음 동영상은 UT교수들이 설명하는 Team Based Learning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xg5FTGZhZs
다양성을 최대화해서 그룹을 짤것
영구적인 그룹으로 만들것
모든 그룹에게 단일한 주제를 줄것
미리 리딩 숙제를 내줄것
토론을 통해 그룹내 답을 찾을것
스크래치 카드 테크닉 등을 이용해서 옳은 답을 찾아 낼때까지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할것
개인의 답을 정정할수 있는 기회를 주되 확실한 레퍼런스를 근거로 논리적 설명을 첨부할 것
그룹내 학생들끼리 서로에게 익명 피드백을 줄수 있도록 하고 점수에 반영할것
등등이 중요점으로 기억난다.
각자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함께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참 매력적이다. 진정한 학문의 전당은 이런 모습이여야 하지 않을까?
Sunday, July 26, 2015
일요일 저녁의 단상
주말이 끝났다.
다시 한주가 시작된다.
똑같은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똑같은 오피스에 들어가서 똑같은 생각들을 하겠지.
아 몸아프다. 아 피곤하다. 아 불안하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반복적인 패턴을 반복하다가 내게 주어진 기회 주어진 시간을 다 소진해 버리면 어쩌지?
이런 패턴에 빠지는 원인에 대한 답을 얻었다.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 마음 가짐인데
마음 가짐을 잡기가 어렵다.
그게 예전에 젊고 건강하고 경험이 없을 때는 마음 가짐 잡기가 쉬웠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에 너무 지쳐 버린 것이다.
테트리스처럼 쏟아지는 일들만 겨우 겨우 막아가면서 살다 보니
더이상 생각이라는 것도 하기 싫고 꿈을 꾸는 것도 사치 같고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우울하게 사는 것이다.
근데 이 원인은 마음을 잡는 다는 것이
오랜 세월 억지로 마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위성으로, 오기로, 독함으로, 윤리로, 종교로
그렇게 마음을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다.
나의 마음은 오랫동안 학대 받아왔다. 스스로에 의해서
채워주지 않고 일만 시켰다.
그래서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들도
마음이 안먹어 지고 계속 미뤄진다.
못살겠다. 죽겠다. 다 포기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태도를 좀 바꿔 보려고 한다.
매순간 나를 돌봐 주기로
몸이 아프면 하던 일을 내려 놓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배고프면 일이 좀 늦어져도 밥을 잘 챙겨먹고 일을 다시 하기로 한다.
하기싫은 일은 안해도 된다.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을 들여서 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가고 싶지 않은 모임은 가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억지로 뭘 하려고 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
자아 실현이라는 거 하고 싶다.
어설프게 남들 비슷하게 살아보려다가 끝나는 삶 아니고
하루를 살아도 나 답게
교수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하여
내가 몆주전에 참석했던 교수법 워크샾 (Teahcing Institute) 에 4일을 들여서 참석하면서 얻은 것중 가장 큰 것은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박사과정에 들어오고 나서 부터 언젠가 부터는 앞날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사라지게 되었다. 너무나도 스트레스와 과로에 찌들어사는 포닥들과 교수들을 보면서 과연 저 직업을 얻기도 어렵겠지만 얻는다고 하더라도 무슨 기쁨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박봉인 직업이라 내 주변의 많은 포닥들은 차라리 회사로 가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현실적이고 물리적인 괴로움이 너무 커서 "과연 내가 과학을 그리고 연구를 그만큼 사랑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매 순간 하게 된다. 어떤 때의 대답은 '그렇다' 이지만 다른때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운적이 없다'일 때도 있다.
그런데 교수법 워크샾을 통해서 접한 bell hooks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른 여러 교육철학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교수라는 직업이 소명을 가지고 임하는 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선생은 마음 먹기에 따라 '학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학점을 주는 사람', '혹은 대학원생과 포닥을 고용하여 연구실적을 뽑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비를 따내는 사람'으로 축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20여년 가까운 학교 생활을 통해 기억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 먹지 않은 선생님들도 정말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그들의 관심, 그들과의 대화와 경험이 나를 지금의 이곳으로 이 모습으로 있게 했다.
내가 12살때 영국에 갔을때 oxford와manchester 시에서 붙여준 영어 튜터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이난다. 영어 못하는 나에게 쉬운 책을 읽어도 배지를 주기로 했던 Sale moore high school의 배려가 내 독서에 끼친 영향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일기에 '담임선생님이 반 학생들을 차별한다'고 썼다가 불려가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를 물으셨던 나이많은 여선생님도 기억이 난다. 중학교 2학년때 좋은 소설과 수필을 소개시켜 주셨던 윤리 선생님도 생각난다. 꼭 개인적이지는 않아도... 어린 학생들도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고 찾아서 읽고 배울수 있다고 믿는 믿음 위에서 우리를 대화가 가능한 사람으로 대했던 그 선생님의 태도가 기억이 난다.
나를 가장 많이 바꾼 것은 대학 3학년때 Liberal Art College에 교환학생을 갔던 경험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모든 미국의 대학들이 그런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곳의 교수님들은 정말 레주메가 빵빵하신 분들인데 그 미네소타 시골 구석에서 적은 학생들을 데리고 정말 재미나게 수업을 하시던 분들이다. 나는 그곳에서 틀에 벗어난 수업 방식을 많이 경험했고 교수님들과 인격적으로 수업을 받았고 교수님들은 나의 언어의 부족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곳에서 공부는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많은 자신감도 얻었다. 만일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유학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박사 지도 교수님. 내게 생각하는 법, 말하는 법, 연구 하는 법, 글쓰는 법을 가르쳐준 선생님. 7년의 박사 동안 나는 교수님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았고 교수님의 머릿속을 따라갔으며 그는 내가 가까이에 할수 있었던 최고의 지성이었다. 그의 조교수시절 어색한 멘토링과 그에 따른 웃지못할 헤프닝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는 아예 멘토링이라는 것 자체를 그만두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교수의 영향력이라는 건 나의 세계관, 학문관에 유일무이한 틀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학문관과 세계관과 또다른 옵션들을 보고 경험하게 해준 나의 포닥 지도교수님들 역시 나를 바꾸어 놓았고 매일 매일 바꾸고 있다. 특히나 포닥 2년차에 지쳐 나가떨어질 뻔한 나에게 다가온 새로운 기회인 지금 연구실은 과거에 경험했던 주류 학문관에 도전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던져 주고 있다. 나의 현재 지도교수는 무한 경쟁과 약육강식의 학문적 풍토 위에서 메말라가는 학문을 하는 기쁨, 사제간의 인격적인 관계, 일과 생활의 발란스 등등의 문제를 중요시 여기고 스스로의 연구실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이는 나의 오랜 고민 "학문을 하려고 하고 연구를 하려고 한다면 수반되는 살인적 스트레스는 감내해야 하는가" 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세계관 속에서 10년간을 경험해온 나에게 이 옷은 아직까지 매우 다르고 어색하다. 그리고 위험하게 느껴진다. 과연 이것이 viable option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설령 내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지도교수님 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자라나거나 살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의 지도교수의 철학에는 내가 꿈꿔왔던 많은 것들이 들어 있으며 전부 다 구현할 수는 없겠지만 일부 만이라도 구현할 수 있다면 내가 만들어갈 작은 공동체가 덜 괴로운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직 포닥일 뿐이야." 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여름 미네소타의 실험실을 기억한다. 옆방 지도교수님이 나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데 그에 대해 내가 대답하기를 "나는 단지 학부생일 뿐인걸요" 라고 말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교수가 "단지 학부생" 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매 순간 매 시기 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다. 스스로를 작게 여기지 말라는 말이었다. 또 한편 박사 3년때쯤 내가 같은 연구실 동기로 부터 전해 들은 선배 박사의 나에 대한 평가는 "지혜의 단점은 스스로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라는 말이었다. bell hooks는 교육 철학에 대한 글을 학부생일 때 부터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고민하고 확립하고 믿는 대로 삶을 사는 것은 당장 지금 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자에게 역할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답을 얻고 믿는대로 살아보자. 그것만이 유일하게 삶을 의미있게 사는 것일테니. 더이상 남들이 바라는 대로의 역할하면서 턱걸이 하느라 허덕이는 삶을 살지말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다. 사실 그것이 유일하게 살 길이다.
덧붙여서...스스로에게 당부의 말: 삶에 의욕이 없고 진로에 회의가 든다면 언제든 bell hooks의 글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
Article Title: Teaching To Transgress
Author: bel hooks (Gloria Watkins)
Key Words:
Engaged Pedagogy
Education as a "practice of freedom"
Key Phrases:
They were comitted to nururing intelect so that we could become Scholars, Thinkers and Cultural workers- black folks who used our "minds" (p2)
Gone was the messiac zeal to transform our minds and beings that had characterized teachers and their pegagogical practices in our all black schools. Knowledge was suddenly about information only. It had no relation to how one lived, behaved. It was no longer connected to antiracist struggle. Bussed to white schools, we soon learned that obedience, and not a zealous will to learn, was twhat was expected of us. Too much eagerness to learn could easily be seen as a threat to white authority.
It surprised and shocked me to sit in classes where professors were not excited about teaching, where dithy did not seem to have a clue that education was about the practice of freedom.
The vast majority of our professors lacked basic communication skills, they were not self-actualized, and they often used the classroom to enact rituals of control that were about domination and the unjust excerscise of power. In these settings, I learned a lot about the kind of teacher I did not want to become.
excitement in class
excitement is generated through collective efoort.
Long before a public ever recognised me as a thinker or writer, I was recognized in the classroom by students - seen by them as a teacher who worked hard to create a dynamic learning experience for all of us.
To educate as the practice of freedom is a way of teaching that eanyone can learn. That learning process comes easiest to those of us who teach who also believe that there is an aspect of our vovation that is sacred. who believe that our work is not merely to share information but ot share in the intellectual and spiritual growth of our students. To each in a manner that respects and cares for the soulds of our students is essential if we are to provide the necessary conditions where learning can most deeply and intimately begin.
That means that teachers must be actively committed ot a process of self-actualization that promotes their own well-being if they are to teach in a manner that empowers students.
I was certain that the task for those of us who chose this vovation was to be holistically questing for self-actualization.
I learned, along with other students, to consider myself fortunate if I found an interestingprofessor who talked in a compelling way. Most of my professors were not the slightest bit interested in enlifhgtment.
It is often productive if professors take the first risk, linking confressional narratives to academic discussions so as to show how experience can illunimate and enhance our understanding of academic material. But mostprofessors must practive being vulnerable in the classroom, being wholly present in mind, body and spirit.
Other's Blog that has more quotes from the article:
https://thephoenixfalls.wordpress.com/2009/05/27/bell-hooks-teaching-to-trangress/
Saturday, July 25, 2015
2015년 여름의 어떤 주말 밤
2015년 7월 25일 토요일
저녁 8시 55분. 하버드 스퀘어에서 가장 people watch 하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있다. 하버드 공식 기념품 가게인 Coop맞은편 스타벅스 2층. 큰 창가 옆에 위치한 쇼파에 앉아있으면 창밖에는 차들이 대기 신호를 받아 서있고 그 앞으로 폭이 10미터는 충분히 넘을 횡단보도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큰개를 데리고 가는 사람, 유모차를 끄는 사람, 친구들과 야광팔찌를 잔뜩 끼고 얼굴에 분짱까지 한 무리들...이렇게 보니 이 동네는 학교앞 답게 20-30대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것을 그닥 인지하고 살지 않았는데 실리콘밸리에서 사는 친구가 방문했다가 그런 지적을 한 뒤로 부터 보니 정말 그러하다.
나는 방금 집에서 저녁을 먹고 샤워를 간단히 하고 편하고 자잘한 프린트가 많이 있는 히피 스타일 원피스에 검정색 펠트 모자를 눌러 쓰고 로션만 바른 맨 얼굴로 이 번화가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일주일간 몸도 엄청 아팠고, 야근도 심하게 한데다가 실험은 지질이도 안되고 겨우 겨우 결과를 내 보았는데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명이 나서 멘탈까지 무너지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뭔가 엄청난 발견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 그마저도 안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연구라는 것들도 그저 의미없는 허송세월이 아닌가 싶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주말이 왔다. 남편이 이른 아침 High Rise라는 근처 빵집에서 사온 빵과 지난달에 두바이에서 놀러온 친구가 사다준 고급 홍차로 아침을 먹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학교 수영장에 가서 한시간 정도 수영을 했다. 이 수영장은 지지난주에 이어 두번째로 방문하는 것인데 참 오랫만에 수영을 다시 시작했는데 두번째 만에 제법 실력을 회복해서 숨차지 않는 페이스로 원하는 만큼 왕복을 할 수 있는 정도를 되찾았다. 퍽이나 뿌듯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만두국을 끓여 먹고 남편이랑 영화를 보았다. Best Exotic Marigold Hotel. 그리고 나서 남편 낮잠 자는 옆에서 아이패드로 피아노 치는 게임을 한시간 정도 했다. 저녁 7시가 되었고 잔치국수를 끓여서 "삼시세끼 어촌편" 엥콜편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연구실에 가면서 나더러 근처 카페라도 가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라기에 이렇게 나왔다.
먼 훗날 지금 이순간을 되돌아 보면 어떤 느낌일까? 분명히 그 때 상황에 맞추어 취사선택된 기억으로 지금을 말하겠지. 나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장래가 불투명한 외국인 노동자, 서른 다섯, 노산의 출발선을 눈앞에 두고도 결혼 7년 차에 아이 가지는것을 꿈꿀수 없는 맞벌이 여성, 그러는 동시에 10여년전 대학을 졸업하면서 꿈꿨던 그 모습 그대로를 현재로 살고 있는 참 복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Tuesday, July 14, 2015
대학교수법전공 교수를 당황케 만든 과학분야 박사들
과학 전공자를 위한 대학 교수법을 강의하는 4일짜리 워크샾에 참석했을 때의 해프닝이다.
Higher Education을 전공한 교수가 여러가지 효과적인 교수법을 실제 실험을 통해 소개시켜 주고 있었다. 교수법의 이름은 Low Cost Clicker. 학생들에게 선다형 문제를 주고 각자 고민하게 한 다음 답안을 무기명으로 받아서 통계를 낸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보드에 칸을 만들고 스티커를 붙이게 하면 된다). 그 이후 학생들이 그룹 토론을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답안을 내게 하고 통계를 낸다.
이 예로 든 것이 " 오븐에 파이를 굽는데 한개의 파이를 굽는데 특정 온도와 시간이 필요하다면 두개의 파이를 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선택지는 1)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2) 온도를 올린다 3) 시간을 늘린다 4) 온도와 시간 모두 높인다.
때는 오후 2시 반. 아침 9시부터 계속된 워크샾의 피로가 밀려오던 중에 이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소그룹 토론하기 전의 통계는 2/3이 1번, 1/3이 3번, 그리고 단 한명이 4번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 후에 다시 답을 모아 통계를 냈는데 결과는 이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지도 교수는 이를 보고 이런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할말을 잃었다. 아마도 과학자들이 엄청 설득하기 어렵고 고집이 세다고 여긴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하려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을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대체 이 연습의 포인트는 뭐였는지... 사람들이 다수의 생각을 알게 되면 동조하게 되나? 그게 좋은건가?
참고로 이 문제를 받았을때 나는 "별걸다 가지고 열을 낸다"라고 쿨내를 내면서 당연히 1번이라고 스티커를 붙였는데 랩에 돌아와서 이 사건을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꾸 거슬렸다. 첫째로 이건 열역학의 문제인데 비전공자들 간의 토론의 대상이 될수 있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로 과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포스닥들의 1/3이 (그리고 유아독존하는 한명이) 오답을 낸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2/3의 정답을 아는 과학박사들이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문제 자체가 별것도 아닌데 목숨걸일 있나? 근데 이 때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주 흥분해 있었고 스티커를 붙이는 손끝 하나하나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
이 기현상을 생각하면 할 수록 소위 가장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며 토론을 장려하는 박사교육과정을 거쳤음에도 학위 소지자들이 발전적인 토론을 통한 문제해결을 잘 하지 못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굉장히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설득시키기도 어렵다는것은 상당히 암울한 부분이다. 학위와 지위가 주는 "나는 안다" "나의 논리는 옳다"라는 사고방식이 30대 초반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이미 깃든것은 아닐까?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아는 문제가 나왔기에 흔들림이 없었지만 혹시나 내가 확실히 모르는 문제를 마주했을때도 "내 나름의 근거"를 대며 주장을 굽히지는 않을런지... 앞으로 살면서 경계해야 할 부분인것 같다.
Higher Education을 전공한 교수가 여러가지 효과적인 교수법을 실제 실험을 통해 소개시켜 주고 있었다. 교수법의 이름은 Low Cost Clicker. 학생들에게 선다형 문제를 주고 각자 고민하게 한 다음 답안을 무기명으로 받아서 통계를 낸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보드에 칸을 만들고 스티커를 붙이게 하면 된다). 그 이후 학생들이 그룹 토론을 한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답안을 내게 하고 통계를 낸다.
이 예로 든 것이 " 오븐에 파이를 굽는데 한개의 파이를 굽는데 특정 온도와 시간이 필요하다면 두개의 파이를 구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였다. 선택지는 1)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2) 온도를 올린다 3) 시간을 늘린다 4) 온도와 시간 모두 높인다.
때는 오후 2시 반. 아침 9시부터 계속된 워크샾의 피로가 밀려오던 중에 이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이 벌어졌다. 소그룹 토론하기 전의 통계는 2/3이 1번, 1/3이 3번, 그리고 단 한명이 4번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 후에 다시 답을 모아 통계를 냈는데 결과는 이전과 완전히 똑/같/았/다! 지도 교수는 이를 보고 이런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할말을 잃었다. 아마도 과학자들이 엄청 설득하기 어렵고 고집이 세다고 여긴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원래 하려던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을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대체 이 연습의 포인트는 뭐였는지... 사람들이 다수의 생각을 알게 되면 동조하게 되나? 그게 좋은건가?
참고로 이 문제를 받았을때 나는 "별걸다 가지고 열을 낸다"라고 쿨내를 내면서 당연히 1번이라고 스티커를 붙였는데 랩에 돌아와서 이 사건을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꾸 거슬렸다. 첫째로 이건 열역학의 문제인데 비전공자들 간의 토론의 대상이 될수 있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로 과학박사 학위를 소지한 포스닥들의 1/3이 (그리고 유아독존하는 한명이) 오답을 낸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2/3의 정답을 아는 과학박사들이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문제 자체가 별것도 아닌데 목숨걸일 있나? 근데 이 때의 분위기는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아주 흥분해 있었고 스티커를 붙이는 손끝 하나하나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
이 기현상을 생각하면 할 수록 소위 가장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며 토론을 장려하는 박사교육과정을 거쳤음에도 학위 소지자들이 발전적인 토론을 통한 문제해결을 잘 하지 못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굉장히 자기 주장이 강하고 설득시키기도 어렵다는것은 상당히 암울한 부분이다. 학위와 지위가 주는 "나는 안다" "나의 논리는 옳다"라는 사고방식이 30대 초반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이미 깃든것은 아닐까?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아는 문제가 나왔기에 흔들림이 없었지만 혹시나 내가 확실히 모르는 문제를 마주했을때도 "내 나름의 근거"를 대며 주장을 굽히지는 않을런지... 앞으로 살면서 경계해야 할 부분인것 같다.
Subscribe to:
Pos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