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1, 2015
벛꽃, 다시 벛꽃 (사쿠라호사라)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미유키의 에도물이다.
지인이 이렇게 물었다. 또 에도물이냐고 에도물이 뭐가 좋냐고.
사실 이 책이 에도물인지는 모르고 구입을 했다. 한국에 갔다가 오는 사람에게 책 부탁을 하고 싶은데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모를 때에 책을 많이 읽는 다는 지인의 지인의 추천으로 받은 목록에서 강추 몇권을 무작위로 부탁한 것중에 하나이다.
그렇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이번에도 참 좋았다.
단순한 삶. 조금은 느린 페이스. 따뜻한 사람들. 예의가 있고 격식이 있는 말투들... 그리고 민담이나 신화를 읽는 것 같은 오래된 이야기가 주는 신비감들이 잘 녹아져 있다. 미스테리 전문 작가 미미여사인 만큼 현실도 아닌 과거 이야기에는 더더욱 초현실 적인 느낌을 잘 녹여 내는것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동안 도미칸 나가야라는 동네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장지문을 열면 장난꾸러기 골목 대장 다이치가 지나갈 것 같고 필묵상 로쿠돈이 문구류를 팔고 무라타야 대본소에 외상을 걸어 놓고 갈 것 같다. 신비로운 아가씨 와카가 벛꽃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질 것 같고 또 어떤 날에는 떠돌이 낭인 무사 나가호리 긴고로가 나타나 주군의 암호 편지를 풀 사람을 찾아 달라고 할 것 같다. 주인공은 고향 시골인 도가네 번에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경험하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상경한 딱히 재주가 없는 집안의 구박데기 둘째 아들인데 그런 인물도 도미칸 나가야에서는 사람 구실을 하면서 남들도 돕고 자기도 도움을 받으면서 잘 어울려 살아간다.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짤막한 인터뷰에서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 내의 관계가 파멸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세상속에서 인간 관계의 따뜻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한다.
이 600쪽에 달하는 이야기의 큰 흐름은 주인공 쇼노스케의 아버지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미스테리한 사건과 그 배후에 있는 인물들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미스테리의 중심에는 정말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지만 사건은 그 인물 하나의 존재만으로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욕망이 얽혀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차마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을 정도의 비극이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어서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연루된 사람이 많고 비밀이 많고 거짓말이 많을 수록 수상한 점들도 많을 수 밖에 없고 각각의 등장 인물들은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진실의 일부를 알아가게 되지만 또 그것들을 모르는 척 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으로 상황에 개입하려고 한다. 다행히도 미야베의 세상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대개 선하고 올바른 사람들이어서 상황이 많이 꼬이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건을 바로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말미에 가서 등장 인물중 최고 권력자이자 주인공의 뒷배인 도코쿠 에도 대행이 나서서 사건들을 수습해서 해결하는 다소 손쉬운 결말로 마무리 되어서 약간은 힘이 빠진다. 하지만 사실 책을 읽다보면 주 이야기 사이에 샌드위치로 끼어진 햄, 치즈, 토마토, 피클, 양상추 같은 이야기 하나 하나 가 재미 있다보니 주 이야기는 "응? 그래서? 그래 맞다 그얘기는 어떻게 된거지?" 라고 정신을 차렸을 때 책을 마무리 하기 위한 수습 처럼 보였다. 이 책은 2014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마치 전원 일기 같이 그냥 그 마을에 살면서 하나 둘 씩 생기는 재밌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많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별명도 가지 가지다. 나는 일본 이름은 잘 인식이 안되기 때문에 어느 지역 어느 동네에서 무슨 가게를 하는 누구의 몇째 아들 누구의 이름은 무엇인데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는 뭐라고 부르고 또 누구는 뭐라고 부른다 - 같은 류의 문장을 읽고 기억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들은 하나 하나가 개성이 분명하고 각자가 특정 에피소드로 주인공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이름이 기억도 잘 되고 인물들에 대해 애착이 간다. 그건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라고 칭찬할 수 밖에 없다.
미야베미유키 에도물 시리즈의 배경인 에도 시대는 1600-1860년대이다. 도쿠가와 막부부터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의 시대. 벛꽃 다시 벛꽃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830년대로 에도 후기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원군 시기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시기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끼친 해악이 비교적 적은 시기이다. 에도시대 이전엔 임진 왜란 그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었으니 말 다했다. 일본 작가가 일본의 마지막 평화 시대에 가지고 있는 향수와 동경을 독자인 내가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될 것은 별반 없지만 뭔가 내가 그런 시선을 우리의 역사 속에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 소설책을 어느 정도 읽어 봤지만 딱히 들어가서 살고 싶은 시대나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참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이고 애환이 서린 인물들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들이 많다. 내가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았음에도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는 것 때문인데 아무래도 그 시대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라도 들어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안드는 시대이다. 우리 나라 옛날 이야기에도 영웅전이 아닌 촌락 생활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라 시대도 고려시대도 조선시대도, 각박하지 않은 정많고 따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Sunday, August 16, 2015
Harvard Film Archive: "McCave and Mrs Miller" Robert Altman (director) Warren Beaty & Julie Christie
늦은 여름의 토요일. 아침엔 일을 하고 오후 늦게는 집안일을 했다. 저녁엔 집에 있기가 싫어졌다. 집에서 한블럭 떨어진 Harvard Film Archive에서 뭐하나 보니까 잘 모르는 70년대 흑백영화를 상영한다고 했다. 저녁 9시. 집을 나서서 바람쐴겸 무작정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영화가 좋은건지 아니면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건지는 레귤러가 아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나중에 IMDB와 wikipedia를 찾아보니 엄청 유명한 영화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bert가 알트만의 훌륭한 영화중에서 독보적으로 완벽한 영화라고 했다니 운이 좋았던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편이 무슨 영화였냐고 묻는데 내 대답은 이랬다 " 재밌었어. 서부 영화. 근데 총쏘고 폼잡고 그런건 아니고, 재밌었다고 하기에는... 슬퍼서...인생이 허망하고 그래"
뭐 그런 묘한 영화였다.
비가 추적추적오는 궂은 날, 털가죽옷을 뒤집어 쓴 주인공이 노새 두마리를 끌고 쓰러져가는 탄광촌에 도착한다. 털가죽옷을 벗고 중절모를 고쳐 쓰며 술집에 들어선 워렌 비티는 주인공 포스가 가득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포커를 시작한다. 떠돌이 사업가인 주인공 멕케이브, 그는 가난한 광부밖에 없는 타운에 매춘업을 시작해서 사업을 일군다. 그러던 중 고급창녀인 밀러 여사 (줄리 크리스티)를 만나 동업을 하게 되고 사업은 번창해서 때가 찌들고 무너져 가던 타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좋은 건물들을 세우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든다. 노동력 밖에 팔것이 없는 가난한 광부들 몸밖에 팔것이 없는 여자들은 전보다는 그래도 즐거운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게 된다. 주인공 멕케이브와 밀러여사 사이에도 애정이 싹튼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본 인근 타운의 마피아는 그의 사업을 매도할 것을 요구한다. 사업가의 자질은 있지만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셈도 잘 못하는 멕케이브는 밀러여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밀당을 하다가 딜을 망친다. 마피아는 보복으로 살인 청부업자 셋을 보낸다. 총질 할줄 안다고 소문은 났지만 실제로는 허당인 멕케이브는 간신히 청부업자들을 모두 쏘아 죽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치명상을 입고 눈더미 속에 쓰러져 외로이 죽는다. 그리고 밀러 여사는 마약굴에서 우수에 젖은 눈으로 천천히 연기를 태운다.
주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조연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불완전한 인간들, 거친 무법의 세상, 가진것 없고 지킬것 없는 이들의 그런 저런 삶과 허망한 죽음.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혼자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이룰 능력도 여건도 되지 않는다. 광부와 창녀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사는 사회. 그 속에서 언덕위에 무늬만 교회 하나 세워 놓고 무법 천지로 총질해서 사람들 죽으면 장례나 사람들 앞에서 주관하는 목사의 존재는 초라하고 무력하다. 포주인 멕케이브는 (이상하지만서도) 그 마을의 희망이었는데 그 마저도 그렇게 덧없이 사라진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집과 영화관 사이에 있는 Harvard Art Museum처마아래 잠시 서서 비를 피했다. 밝은 핀조명들 아래 반짝 반짝 빛나는 길과 거리들, 깔끔한 조경과 적막한 학내 길거리의 평화속에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람이 먹고 비를 피하고 잠을 자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노후를 준비하는 그런 어떤 것들도 기대할 수 없는 서부 개척시대 워싱턴주의 황야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인간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박테리아 처럼 살아남지 못하면 끝나고 살아남은 자만 증식해서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라고... 눈을 들어 문명화된 도시를 보면 너무 다르지 않냐고 말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면이 있다. 장기 불황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 3포세대니 5포세대니 N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과장이 아닌 시대에 우리의 동시대인들은 그렇게 덧없이 스러지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김진영 박사님을 떠나 보내며
그가 하버드 메디컬 스쿨에 마지막으로 근무하러 나온 지난 목요일의 저녁에 그를 만났다.
그가 유학 온 이후로 10년을 탔던 자동차를 오늘 딜러샾에 팔았다고 한다. 일터에서 물건들도 정리하고 나를 만난 시간은 저녁 6시 반. 여름의 해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길치 방향치 그리고 일 이외에 몇가지 관심있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김진영박사님. 고작 몇달전에 나의 소개로 알게된 타이 가게에 텀얌누들숲에 폭 빠졌지만 또 내가 데려가지 않으면 15분이나 걸어 가야 하는 곳에 있는 식당은 절대 가지 않는 습성의 소유자다.
차 판 이야기를 한참을 하시기에 차 팔았으니 저녁을 쏘시라고 내가 덤테기를 씌워서 국수 두그릇에 타이식 파전까지 에피타이져로 시키고 배부르게 먹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커피가 맛있는 크레페 집으로 옮겨가서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김박사님은 이야기를 참 잘 한다. 평소에 그렇게 은둔자처럼 살면서도 한번 만나서 말을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포닥때나 목숨걸고 일하느라 조용하게 살았지 이전 박사때는 엄청 사교적이고 잘 놀았던 것 같다. 그와 여러 잡다 이야기를 했다. 왜 그런 사람이 있다. 얘기를 시작하면 가지를 치고 또 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첫 조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안지 이틀이 지난 후인지라 조카, 아기, 인간의 발생학적인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김박사님은 자기 조카의 환심을 얻으려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몇시간씩 밀어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김박사님의 한우물 파는 성격 덕에 한가지 이야기를 100번 들었다. 말인 즉슨, 자기가 이제 교수잡을 잡아서 가는 홍콩으로 오라는것. 홍콩이 돈도 많이 주고 좋다고 ㅋㅋ 아무리 내가 지금 자격이 안되서 못가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도 심심하려고만 하면 그 이야기를 꺼네는 김박사님이 싫지만은 않았다. 본인이 지금 리크루트 하려는 두명중에 한명이라는데 내심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다. 물론 "원서내고 인터뷰 가면 밥만 맛있는거 사주고선 리젝 주는거 아니냐"고 받아쳤지만 말이다.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지만 그냥 그렇게 앉아서 해가 지고 어두워 질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실감은 안나지만 오늘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앉아서 수다를 떨 수 있는 날이 오기 어려울 테니. 만남과 이별은 유학생 생활의 일상 다반사 이지만 그래도 어떤 이별은 세상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한 구석의 등불이 가만히 꺼지는 것과 같은 기분. 조금 더 내가 작아지고 외로워 지는 기분. 깜빡이는 시간의 끝자락에서 헤어지고 연구실로 되돌아가는 길은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완벽한 여름 밤이었다. 밀린 일들을 하느라고 마지막 셔틀을 놓치고 가장 마지막 시내버스인 12시 45분차를 겨우 잡아 타고 지쳐 귀가 하는 버스 안에서 그래도 그를 알아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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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리야드와 오딧세이
2. 새벽미사
3. 본조비
4. 친조카, 뉴저지조카
5. 지도교수의 첫 교수제자
6. Big Picture -Douglas Kennedy ( 변호사인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사진작가의 아이덴티티로 사는 이야기, 모든 것을 잃는 다는 것의 두려움, 작가의 힘)
7. Tom Yam Noodle Soup
8. 그림 그리기
9. 사서 걱정하기, 교수 쪼기,
10. 규칙적인 운동
11. Early Bird
12. 귀걸이, 장신구
13. 굿딜로 인터넷 쇼핑하기
14. 깨끗한 벤치
15. 살빼야해
Sunday, August 9, 2015
서태지의 펜타포트 공연을 축하하며
서태지가 2015년 8월 8일 사상최초로 락페스티벌에서 참여했다. 이제껏 그는 개인 콘서트 혹은 한국 락페의 시발이라고 할수 있는 본인 기획의 서태지ETP콘서트등에만 출현해 왔다. 이번엔 이례적으로 인천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써 참여한 것. 락 매니아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대중가수로서의 서태지라는 편견을 부숴버리기에 충분한 압도적인 공연이었다. 대중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솔로 활동 이후로 단단히 다져온 파워풀한 락사운드의 셋리스트가 서태지 밴드 특유의 무대 장악력과 서태지 본인이 준비해온 아시아 최고의 음향장비와 화려한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면서 락 매니아들을 열광시켰다. 그 결과 서태지는 10주년을 맞는 펜타포트에게 4만명이라는 최다 관객수기록을 선사하여 주었다.
이쯤에서 추억하는 작년의 컴백 콘서트 (뒤늦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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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태지 9집 컴백 콘서트 때 서태지 공연을 처음 가보았다. 그 때의 충격은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특별히 9집 음악들은 정말 사운드들이 빼곡하게 차있는 굉장히 복합적이 노래들이 많은데 음 하나 하나가 너무 투명하고 깨끗하게 전달이 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핵폭탄으로 무작정 고막을 다 깨부시는 것이 아니라 무림 고수가 단도를 들고 다가와서 슬쩍 지나가면 대나무가 100 조각으로 깨끗하게 절단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매운 작은 주먹 같은 음의 펀치들은 맞아보지 않으면 정말 모른다.
9집곡중 첫곡이었던 소격동이 울려 퍼질때 설레임과 환상적임 기대감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벅차오른다. 추억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넣은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음압을 조절해서 음들이 다가왔다 멀어졌다 하는데 이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서태지가 추억과 그리움에 대해 노래할때 나는 내가 그를 그리워 했음을 진하게 느꼈다.
그리고 크리스 말로윈, 아 내가 이곡을 직접 듣다니... 선공개로 이미 많이 들었지만 서태지가 이 노래를 처음 세상에 연주할때 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크리스말로윈은 정말 신기한 곡으로 음악적으로 엄청나게 독창적인 곡이면서도 대중적으로 좋아할만한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가졌다. 그런면으로 볼때는 거의 하여가 같은 위상을 가졌다. 게다가 가사 하나하나에 심은 메세지들은 정말 2014년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깊이와 힘이 깃들어 있다. 서태지 공연 홍보로 쓰인 컴백홈의 가사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얼마나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가. "대장... 나 이젠 잘 모르겠어" 라고 조용히 읊조리진 않았던가? 그런데 서태지는 아직도 그곳에 있다. 내가 바라보던 그곳에,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그곳에서 우리를 부른다. 대중들의 오해와 멸시 그리고 세월의 무게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음악적 도전을 멈추고 있지 않으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나의 어린날의 우상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꼈다. 어린날 나의 가슴을 울렸던 이유와 같은 이유로 나는 울었다.
그리고 처음 멘트들 중에서 서태지가 그랬다. "어려분 많이 보고싶었어요" 그 목소리를 내가 들었고 그의 얼굴을 내가 보았다. [서태지가 인기가 있었을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나는 팬활동 같은것은 해본 적이없었고 학창시절에도 팬이라는건 비현실적이고 소모적인 짝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음반 사 듣고 좋으면 되는 것이지 극성 떨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스타를 스타로 만들어주는것은 팬이라는걸. 이후에 찾아서 알아 본 서태지와 팬들의 역사는 감동 그자체였다. 그 시절 한국적 현실에서 가수라는 존재는 방송국이 이용하는 소모적인 존재였을 뿐이었을때 서태지가 그토록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서태지를 서태지로 만든것은 절반은 팬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팬들을 정말 소중하게 대해 왔었다는 것을...] 이 컴백콘서트에는 그 는 오랜 시절을 함께해온 그의 동료고 친구이자 가족들인 팬들에게 아주 많이 보고싶었노라고 고백했다... 서태지는 이날 처음으로 "내모든것"을 불렀다. 오래전 늘어지도록 들은 1집에 수록된, 참 좋아하는 곡이지만 서태지가 한번도 방송에서 부른적이 없었던 그 곡을...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 이제 제 모든것을 드릴께요 라는 멘트와 함께. (이 때 서태지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땅위에 서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9집의 성공으로 그는 다시 하늘위로 날아갔지만)
아무런 들을 준비가 없을 때 훅 들어온 숲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프리즌브레이크... 낮선 노래를 경청하는 묘한 고요함의 시간!?. 저와함께 여러분도 저물어간다?!는 멘트와 함께 시작한 90's Icon. 돌이켜 생각해 보면 웃음 짓게하는 추억의 시간들이었다.
널지우려고해, 인터넷 전쟁, 헤피엔드, 컴백홈, 달리고 또 달리고 행복했다. 목청껏 따라 부르고 또 뛰었다.
교실 이데아....아 교실이데아... 이 노래가 나오고 열심히 따라 불렀던 그 교실 속의 나. 이제는 나는 대학을 졸업한지가 10년이고 박사 학위도 받고 공부하는 도시인 보스턴의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을 하고 있다. 평생 학교에서만 살아온 나. 이제는 곧 선생이 되는 길목에 있는 나.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됬다'고 하던 나는 과연 다른 선생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어야만 한다!!
막곡 하여가
앵콜곡 take 5.
날아가는 노랑 종이비행기들.
내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아우르는 음악들
꿈꿔왔던 생각들 품어왔던 이상들
20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나의 우상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
이보다 더 감동적인 콘서트는 내 생에에 더이상 없을 것 같다.
Saturday, August 8, 2015
고래 본 이야기
지난 주말에 Cape Cod 끝단 Provincetown에서 출발하는 Whale Watch를 다녀왔다. 3시간의 크루즈 동안 고래를 최소한 20마리는 본 것 같다. 고래를 발견하면 정교한 운항으로 가까이까지간 후 천천히 다가가서 아주 근접한 곳에서 고래들을 볼 수 있었다.
고래들은 멀리서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수면 근처에서 물장구를 친다. 그 거대한 몸으로 점프해서 거꾸로 드러 누워 떨어지지 않나, 옆에 달린 팔에 가까운 하얀 지느러미를 하늘로 쳐들고 흔들지를 않나, 물을 공중으로 분사하지 않나, 그 멋지게 잘빠진 꼬리를 펄럭이지를 않나!
다른 해양 생물들이라면 감히 천적에게 발견될까 자기 위치를 드러내기를 꺼릴텐데 천적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고래는 바다의 왕 답게 두려울 것이 없나 보다. 망망 대해에 거대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놀이를 하는 이 거대하고 멋진 생물 앞에 어른이고 아이고 넋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선체가 기울어지도록 한쪽으로 몰린 사람들은 고래가 공중에 떠오를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고래들은 배가 다가오는 것을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계속 물놀이를 하는 놈, 작은 개인 보트 주위를 뱅글 뱅글 도는 아기 고래들, 그리고 수유중인 엄마와 아기 고래 등등 많은 고래들이 도망가지 않고 하던일을 계속 하는듯 했다. 쟤네들은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조그만 인간들이 배를 조종해서 다가오는것은 알고 있을까? 혹시 우리가 다가와서 더 많이 물장구를 치는 것은 아닐까? 가이드를 해주었던 해양학자에게 물어보니 쟤네들은 우리와 상관없이 평소에도 물장구를 치고 산다고 답해 주었다. 수 km밖에서 망원경으로 보아도 쟤들은 저러고 있다고... 나중에 Cetacean Surfacing behavior 아래있는 Wikipedia 항목들을 읽어보니 이런 행동들에대해서 연구는 많이 되어 있는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고 했다. 가설들에는 다른 고래들과의 의사소통의 수단, 자신의 건강과 체력에 대한 과시, 물고기떼 사냥에 유리한 기술, 교미를 위한 유혹의 수단 등등이 있다.
고래는 정말 이상하다. 그리고 정말 멋지다. 그리고 그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 만으로도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 고래는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수면 근처에서 놀라운 행동들을 한다. 나는 몇년전 샌디에고의 씨월드에가서 "샤무"쇼를 본적이 있다. 거대한 고래를 마치 돌고래 조련하듯 점프하게 하고 물장구 치게 하고 꼬리를 흔들고. 인간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눈 앞의 엄청난 생물체에 경탄과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로 얼마 되지 않아서 그 고래들이 평소 얼마나 작은 수조 속에서 고통 받고 정신질환으로 죽기까지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때에도 나는 샤무 쇼를 본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지만 동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동물원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저 안타깝다는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Whale Watch를 가서 고래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면서 정말 씨월드의 샤무쇼는 존속되어야 할 근거가 하나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2008년 한해에만 whale watch를한 인구가 13 million이라고 한다. 지난주에 고래 보고 와서 주변에 이야기 하니까 주변 사람들의 반 이상이 한번 이상 whale watch를 해 본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배타고 나갔는데 고래를 한마리도 보지 못하고 왔다고 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Boston Harbor에서 떠나는 whale watch는 많이 멀리 나가지 않기 때문에 고래를 많이 못본다고 하고 내가 갔던 Provincetown이나 혹는 약간 북쪽의 Gloucester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고래 보는 시기는 4월에서 10월이라고 한다. 여름의 보스턴 앞바다는 플랑크톤이 많아서 물고기들이 많고 그래서 고래들도 밥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그래서 보스턴쪽 동부 바닷물은 캐러비안의 에메랄드빛이 아닌 혼탁하고 미역 같은 것이 잔뜩 떠다니는 그런 물이다)
내가 작은 빌딩속의 작은 방에서 작은 문제들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본 고래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 질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네들을 넓은 바다에서 그 큰 몸집으로 풍덩풍덩 물놀이를 하고 있을 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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