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6, 2015
Harvard Film Archive: "McCave and Mrs Miller" Robert Altman (director) Warren Beaty & Julie Christie
늦은 여름의 토요일. 아침엔 일을 하고 오후 늦게는 집안일을 했다. 저녁엔 집에 있기가 싫어졌다. 집에서 한블럭 떨어진 Harvard Film Archive에서 뭐하나 보니까 잘 모르는 70년대 흑백영화를 상영한다고 했다. 저녁 9시. 집을 나서서 바람쐴겸 무작정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영화가 좋은건지 아니면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건지는 레귤러가 아닌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나중에 IMDB와 wikipedia를 찾아보니 엄청 유명한 영화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bert가 알트만의 훌륭한 영화중에서 독보적으로 완벽한 영화라고 했다니 운이 좋았던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편이 무슨 영화였냐고 묻는데 내 대답은 이랬다 " 재밌었어. 서부 영화. 근데 총쏘고 폼잡고 그런건 아니고, 재밌었다고 하기에는... 슬퍼서...인생이 허망하고 그래"
뭐 그런 묘한 영화였다.
비가 추적추적오는 궂은 날, 털가죽옷을 뒤집어 쓴 주인공이 노새 두마리를 끌고 쓰러져가는 탄광촌에 도착한다. 털가죽옷을 벗고 중절모를 고쳐 쓰며 술집에 들어선 워렌 비티는 주인공 포스가 가득하게 좌중을 휘어잡고 포커를 시작한다. 떠돌이 사업가인 주인공 멕케이브, 그는 가난한 광부밖에 없는 타운에 매춘업을 시작해서 사업을 일군다. 그러던 중 고급창녀인 밀러 여사 (줄리 크리스티)를 만나 동업을 하게 되고 사업은 번창해서 때가 찌들고 무너져 가던 타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좋은 건물들을 세우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든다. 노동력 밖에 팔것이 없는 가난한 광부들 몸밖에 팔것이 없는 여자들은 전보다는 그래도 즐거운 커뮤니티를 이루고 살게 된다. 주인공 멕케이브와 밀러여사 사이에도 애정이 싹튼다. 그러나 그의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본 인근 타운의 마피아는 그의 사업을 매도할 것을 요구한다. 사업가의 자질은 있지만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셈도 잘 못하는 멕케이브는 밀러여사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밀당을 하다가 딜을 망친다. 마피아는 보복으로 살인 청부업자 셋을 보낸다. 총질 할줄 안다고 소문은 났지만 실제로는 허당인 멕케이브는 간신히 청부업자들을 모두 쏘아 죽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치명상을 입고 눈더미 속에 쓰러져 외로이 죽는다. 그리고 밀러 여사는 마약굴에서 우수에 젖은 눈으로 천천히 연기를 태운다.
주연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조연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불완전한 인간들, 거친 무법의 세상, 가진것 없고 지킬것 없는 이들의 그런 저런 삶과 허망한 죽음.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혼자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이룰 능력도 여건도 되지 않는다. 광부와 창녀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사는 사회. 그 속에서 언덕위에 무늬만 교회 하나 세워 놓고 무법 천지로 총질해서 사람들 죽으면 장례나 사람들 앞에서 주관하는 목사의 존재는 초라하고 무력하다. 포주인 멕케이브는 (이상하지만서도) 그 마을의 희망이었는데 그 마저도 그렇게 덧없이 사라진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집과 영화관 사이에 있는 Harvard Art Museum처마아래 잠시 서서 비를 피했다. 밝은 핀조명들 아래 반짝 반짝 빛나는 길과 거리들, 깔끔한 조경과 적막한 학내 길거리의 평화속에서 안도감이 밀려왔다. 사람이 먹고 비를 피하고 잠을 자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노후를 준비하는 그런 어떤 것들도 기대할 수 없는 서부 개척시대 워싱턴주의 황야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인간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박테리아 처럼 살아남지 못하면 끝나고 살아남은 자만 증식해서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라고... 눈을 들어 문명화된 도시를 보면 너무 다르지 않냐고 말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면이 있다. 장기 불황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 3포세대니 5포세대니 N포세대니 하는 말들이 과장이 아닌 시대에 우리의 동시대인들은 그렇게 덧없이 스러지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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