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1, 2015
벛꽃, 다시 벛꽃 (사쿠라호사라)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미유키의 에도물이다.
지인이 이렇게 물었다. 또 에도물이냐고 에도물이 뭐가 좋냐고.
사실 이 책이 에도물인지는 모르고 구입을 했다. 한국에 갔다가 오는 사람에게 책 부탁을 하고 싶은데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모를 때에 책을 많이 읽는 다는 지인의 지인의 추천으로 받은 목록에서 강추 몇권을 무작위로 부탁한 것중에 하나이다.
그렇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이번에도 참 좋았다.
단순한 삶. 조금은 느린 페이스. 따뜻한 사람들. 예의가 있고 격식이 있는 말투들... 그리고 민담이나 신화를 읽는 것 같은 오래된 이야기가 주는 신비감들이 잘 녹아져 있다. 미스테리 전문 작가 미미여사인 만큼 현실도 아닌 과거 이야기에는 더더욱 초현실 적인 느낌을 잘 녹여 내는것 같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동안 도미칸 나가야라는 동네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장지문을 열면 장난꾸러기 골목 대장 다이치가 지나갈 것 같고 필묵상 로쿠돈이 문구류를 팔고 무라타야 대본소에 외상을 걸어 놓고 갈 것 같다. 신비로운 아가씨 와카가 벛꽃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질 것 같고 또 어떤 날에는 떠돌이 낭인 무사 나가호리 긴고로가 나타나 주군의 암호 편지를 풀 사람을 찾아 달라고 할 것 같다. 주인공은 고향 시골인 도가네 번에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경험하고 그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상경한 딱히 재주가 없는 집안의 구박데기 둘째 아들인데 그런 인물도 도미칸 나가야에서는 사람 구실을 하면서 남들도 돕고 자기도 도움을 받으면서 잘 어울려 살아간다. 책 말미에 있는 작가의 짤막한 인터뷰에서 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데 가족 내의 관계가 파멸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세상속에서 인간 관계의 따뜻함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한다.
이 600쪽에 달하는 이야기의 큰 흐름은 주인공 쇼노스케의 아버지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가게 한 미스테리한 사건과 그 배후에 있는 인물들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미스테리의 중심에는 정말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지만 사건은 그 인물 하나의 존재만으로는 이루어 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욕망이 얽혀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차마 진실을 알고 싶지 않을 정도의 비극이 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어서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연루된 사람이 많고 비밀이 많고 거짓말이 많을 수록 수상한 점들도 많을 수 밖에 없고 각각의 등장 인물들은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 진실의 일부를 알아가게 되지만 또 그것들을 모르는 척 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으로 상황에 개입하려고 한다. 다행히도 미야베의 세상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대개 선하고 올바른 사람들이어서 상황이 많이 꼬이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건을 바로잡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말미에 가서 등장 인물중 최고 권력자이자 주인공의 뒷배인 도코쿠 에도 대행이 나서서 사건들을 수습해서 해결하는 다소 손쉬운 결말로 마무리 되어서 약간은 힘이 빠진다. 하지만 사실 책을 읽다보면 주 이야기 사이에 샌드위치로 끼어진 햄, 치즈, 토마토, 피클, 양상추 같은 이야기 하나 하나 가 재미 있다보니 주 이야기는 "응? 그래서? 그래 맞다 그얘기는 어떻게 된거지?" 라고 정신을 차렸을 때 책을 마무리 하기 위한 수습 처럼 보였다. 이 책은 2014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마치 전원 일기 같이 그냥 그 마을에 살면서 하나 둘 씩 생기는 재밌는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많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별명도 가지 가지다. 나는 일본 이름은 잘 인식이 안되기 때문에 어느 지역 어느 동네에서 무슨 가게를 하는 누구의 몇째 아들 누구의 이름은 무엇인데 어떤 일이 있었기 때문에 누구는 뭐라고 부르고 또 누구는 뭐라고 부른다 - 같은 류의 문장을 읽고 기억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의 인물들은 하나 하나가 개성이 분명하고 각자가 특정 에피소드로 주인공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이름이 기억도 잘 되고 인물들에 대해 애착이 간다. 그건 전적으로 작가의 힘이라고 칭찬할 수 밖에 없다.
미야베미유키 에도물 시리즈의 배경인 에도 시대는 1600-1860년대이다. 도쿠가와 막부부터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의 시대. 벛꽃 다시 벛꽃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830년대로 에도 후기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원군 시기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시기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끼친 해악이 비교적 적은 시기이다. 에도시대 이전엔 임진 왜란 그 이후에는 일본 제국이었으니 말 다했다. 일본 작가가 일본의 마지막 평화 시대에 가지고 있는 향수와 동경을 독자인 내가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될 것은 별반 없지만 뭔가 내가 그런 시선을 우리의 역사 속에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인 것 같다. 우리나라 소설책을 어느 정도 읽어 봤지만 딱히 들어가서 살고 싶은 시대나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로 참 각박하고 어려운 현실이고 애환이 서린 인물들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들이 많다. 내가 박완서 작가를 좋아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았음에도 따듯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는 것 때문인데 아무래도 그 시대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라도 들어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안드는 시대이다. 우리 나라 옛날 이야기에도 영웅전이 아닌 촌락 생활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라 시대도 고려시대도 조선시대도, 각박하지 않은 정많고 따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있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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